오늘은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군요. 그야말로 월요일~!

어제는 언니네 가족과 함께 광릉에 다녀왔습니다.
광릉에는 왕(세조)의 무덤과 왕비(정희왕후)의 무덤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제사를 지내는 사당 비슷한 것도~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서 무척 후회했다는... ㅠ.ㅠ
이럴거면 도대체 디카는 왜 산건지... OTL

암튼 광릉까지 올라가는 길이 양옆에는 키가 큰 나무들로 가득했는데요.
더웠던 날씨에 시원한 곳에 들어가서 넘 좋았어염. 역시 좋은 곳을 다닐려면 차가 필요해요~~ -_-
암튼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다람쥐도 보구... 맛있는 점심도~
즐거운 주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도 열심히~ 힘내서... 아자아자 화이팅!!!


사적 제197호. 1468년(세조 14)과 1483년(성종 14)에 축조되었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어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국방의 강화, 서적의 찬간, 토지제도 및 관제의 개혁 등 치적이 많았다. 만년에는 왕위 찬탈의 번뇌로 불도에 귀의하였고, 1468년 9월에 예종(睿宗)에게 전위하고 52세에 죽었다. 왕비 정희왕후는 세조가 즉위하자 왕후로 책봉받았고, 예종과 성종의 섭정(攝政)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1483년(성종 14) 온양행궁에서 죽었다. 광릉은 조선 왕릉제도에서 중요한 왕릉경영을 시사해 준다. 즉, 왕이 ‘원릉(園陵)의 돌방[石室]은 유해무익하니 석실과 사대석(沙臺石:屛石)을 쓰지 말라’고 유언으로 명하였다 하여 병석을 없애고 돌방은 회격(灰隔)으로 바꾸어 검약의 미덕을 몸소 보였다. 또 광릉에서 처음으로 두 언덕을 한 정자각(丁字閣)으로 묶는 새로운 배치양식을 수립하여 후세의 왕릉제에 영향을 끼쳤다. 세종의 영릉(英陵)을 국초의 왕릉제를 총정리한 것이라 한다면, 광릉은 그 왕릉제에 일대 개혁을 이룬 것으로, 조선 왕릉제도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by 푸른달팽이 | 2004/09/06 15:15 | Today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armise.egloos.com/tb/70603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